화폐의 역사
파운드 : 산업혁명과 식민지의 힘
영국은 18세기 산업혁명을 선도하며 영국의 생산능력은 빠르게 향상되었다. 그리고 런던 금융시장의 번영은 정부의 채권시장을 확대하고 발전시켰으며, 영국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은 외국 투자자들로부터 환영을 받아 융자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었고 이에 따라 더 많은 자금을 모아 국방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식민지의 증가, 국제무역 규모의 확대가 일어났는데, 세계시장에서는 각국 간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호소하며 통일된 교환매체, 즉 통일된 화폐의 출현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은 1816년 ‘금본위제 법안’을 제정하면서 세계 최초로 금본위제를 채택했다. 이 때 영국은 거액의 무역흑자를 통해 많은 금을 축적하고 있었는데, 파운드화는 금 본위제 아래에서 자유태환, 자유수출입 등이 모두 파운드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실제로 파운드화는 진정한 SDR로 대접 받았다. 파운드화는 국제화 수준이 가장 높은 역사상 최초의 신용지폐였으며,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금과 완전한 자유태환이 가능했다.
영국의 뒤를 이어 산업혁명에 성공한 독일, 미국은 후발주자의 우위를 활용해 영국을 뒤쫓았고,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금본위제는 중단되었다가 국제무역질서를 바로잡고자 국제사회는 금 본위제의 부활을 결정했다. 그러나 영국은 이를 받쳐줄 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일종의 변형된 금 본위제인 금괴본위제를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파운드화의 가치하락으로 영국 경제는 국제수지의 어려움과 금의 대량 유출을 겪으면서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달러 : 파운드와의 경쟁과 전쟁의 힘
1913년 미국은 1907년의 금융위기를 거울삼아 유럽과는 차별화 된 미국식 중앙은행을 설립했다. 연방준비제도의 탄생은 중앙은행제도 사상 획기적인 시도였으며, 집중관리와 분산경영, 효율과 공평의 상호 균형을 시도한 성공적인 사례였다.
미국은 달러의 국제화를 위한 초석으로서 1912년 달러외교 정책을 가동하면서 해외에서 이익을 창출하고자 했다. 국제관계를 처리할 때 무력대신 달러를 앞세운 정책을 활용함으로써 세계경제에서 영향력을 확장하게 된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서 본격적인 달러의 국제화에 돌입하게 되는데, 1차세계대전 이후 유럽국가들의 화폐가치가 대부분 불안했고, 고정가격으로 금과 태환을 보장하는 달러가 훨씬 매매력적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영국과의 경쟁을 거쳐 결국에는 달러를 중심으로 한 국제 금 태환 체제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엔 : 달러에 의존하면서도 전진하는 화폐